스마트한 계란 삶기(feat.롬멜스바흐 계란찜기)

아는 의사 쌤이 출출할 때마다 곁에 두고 주워 먹는 건강한 간식으로 삶은 계란, 감자, 고구마를 추천하셨다. 굳이 의사 쌤의 추천이 아니더라도 저 콤비가 건강한 간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건 뭐 하나 삶으려면 냄비 꺼내야지, 잘 익나 노려봐야지, 삶고 나서 설거지해야지, 등등 일련의 과정이 귀찮기 때문. 특히 계란은 그러고도 익힘 정도가 내 취향에 안 맞는다거나 껍질이 제대로 까지지 않는 일이 얼마나 또 많았던가. 그리하여 장만했다. 바로 계란찜기를! 👨‍🍳

살만한 계란찜기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였다. 간단히 때우고 싶을 때, 샐러드에 화룡정점을 찍고 싶을 때, 매콤한 비빔면을 먹을 때 등등 삶은 계란만큼 만만한 식사이자 고명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만한 존재감과 달리 계란 삶는 것도 일인 터라 귀찮음을 면제받는 대신 2% 부족한 영양과 맛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어떻게든 일을 줄여 보려고 인터넷 지식인들이 올려둔 갖가지 꼼수를 틈만 나면 찾아봤지만 이거다 싶은 방법은 당연히 없더라.. 💦

 

계란찜기가 있는 걸 보면 지구에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인류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일 터였다. 하지만 기존의 찜기들은 쫌 그랬다. 계란 삶고 나서 한시바삐 숨겨두고 싶은 그런 디자인이라고 할까나? 계란찜기가 잘만 삶아지면 되지, 예쁘기까지 해야 하냐 싶겠지만 매번 구석에 처박아 놓느라 손이 잘 안 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기능은 어차피 거기에서 거기일 게 뻔하니 주방 한쪽에 항상 두고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이 우선순위였다. 유투*에 올라온 롬멜스바흐를 보자마자 폭풍 검색에 들어갔던 것도 바로 무난한 외관 덕이었다. 

사용 방법

 

작동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계량컵으로 물을 스텐바닥에 채운 후 뭉뚝한 부분이 위로 향하도록 계란을 올려두고 원하는 익힘 정도에 따라 다이얼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이때 계란의 뭉뚝한 부분을 바늘로 찍어 구멍을 내야 한다. 사실 디자인 외에도 쫄보는 이 점이 걱정스러웠다. 구멍을 내려다가 깨먹는 게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더라. 

물 계량컵 바닥 부분에 바늘이 있어서 계란의 뭉뚝한 부분을 쉽게 구멍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구멍을 낸 채로 계란을 한동안 방치하면 내용물이 흘러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매뉴얼에도 없는 내용이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

 

본체 오른쪽에 있는 다이얼을 돌리면 작동이 시작되고 곧 김이 오른다. 완숙을 원할 경우 다이얼을 최대 끝까지(13~15분), 반숙은 중간(8~10분), 완전 반숙은 약간(4~6분)만 돌리면 된다. 내가 원하는 익힘 정도는 반완사(반숙과 완숙 사이), 딱 2/3 지점이다.

단점과 장점

후처리의 귀찮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처음 사용하자마자 스텐바닥에 남은 석회자국에 기함할 뻔했다. 식초를 탄 물로 지우라는데 일단은 못 본 척하는 중. 덮개와 트레이도 대충 물로 휑궜더니 물자국이 남길래 결국 다시 설거지해야 했다. 냄비 설거지보다는 낫겠거니 위로하는 수밖에 없다.

수란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불호라 시도도 안 해봤다. 게다가 수란용 트레이가 플라스틱이라 꺼려지기도 하고. 수란용 트레이는 배송 오자마자 창고행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소금을 따로 넣지 않아도 껍질이 잘 벗겨진다는 점이다. 난생처음 계란을 삶았을 때 껍질과 함께 떨어져 나가는 흰자들을 지켜보면서 삐질삐질 땀을 흘려봤다면 아마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될 것이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냄비에 삶은 것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특히 막 쪄낸 계란의 촉촉함과 쫀득함은 일반 냄비에 삶은 계란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삶은 계란은 좋아하지만 삶는 내공이 영 어설프고 약하다? 그렇다면 당연 질러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