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으로 예쁜 꽃을 곁에 둘 수 있는 미니 호접란 키우기

지구인이라면 초록초록한 식물들과 알록달록한 꽃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옛날 학교 앞 병아리처럼 화분들 1, 2개는 무지개다리로 보낸 기억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쬘 볕도 들지 않는데 하물며 화분까지? 미세먼지 무서운데 통풍이 중요하다고? 자칫하다간 머리 나쁜 벌레 XX가 무단침입해 자기 집 하겠다고 들러붙는데? 가지가지 핑계로 꽃은 물론이요, 화분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는지 자꾸 꽃을 곁에 두고 보고 싶었던 어느 날이었다.

 

작고 소중한 호접란 꽃송이

 

유튜브께서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주신 영상이 바로 호접란을 다룬 식집사들의 관리팁이었다. 그나마 경험도 있고 자신도 있는 수경재배 관련 영상을 열심히 탐독한 영향이었다. 난화분은 승진 발표 시즌에 사무실로 들이닥치는 선물 정도로 생각했던 터라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파스텔 빛으로 여리 여리, 무성하게 피는 꽃들이 취향인 터라 빨갛고 노랗고 분홍 한 꽃들을 감상하는 건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카톡 메시지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고 슬슬 그 빨갛고 노랗고 분홍인 꽃들이 곱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엇보다 수경재배로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들었다. 어디 한 번 속는 셈 치고 키워봐? 그렇게 호접란 둘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호접란이란

호접란은 열대아시아와 호주 북부를 원산지로 둔 난초로 팔레놉시스(Phalaenopsis)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비를 닮았다고 해서 나비 접자를 붙인 국내 호칭이 훨씬 호접란답다. 물을 갈아주기 위해 호접란 잎을 잡아 들 때마다 나비 날개를 잡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꽃말도 예쁘다.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오다니... 마케터들이 낭만 한 스푼에 상술 열댓 스푼을 섞어 작명했겠지만 기분 좋게 흐린 눈 해주고 싶은 꽃말이다.

 

색상을 달리 한 품종만 해도 50여 종이 넘는다던데 드래곤볼 모으듯 품종들을 수집하는 덕후들도 있는 듯. 오묘한 색상의 품종은 워낙 희귀해서 이제 막 입문한 주제에 욕심이 나긴 하더라. 내가 들인 품종은 미니 호접란으로 노란 꽃술과 흰 꽃잎으로 이루어진 아마빌리스, 분홍 꽃술과 노란 꽃잎으로 이루어진 Y242다. 아마빌리스는 꽃대가 다 올라와 봉우리가 터지기 직전의 꽃대 호접란으로, Y242는 아직 잎만 틔운 개화주로 주문했다. 과연 수경재배로 꽃을 틔울 수 있을지 아마빌리스로 일단 검증한 이후 Y242의 향후 노선을 정할 계획이었는데...    

호접란의 개화 과정

수경재배가 가능하다는 유튜버들의 말과 달리 가게에서 택배에 동봉한 호접란 관리 매뉴얼에는 호접란 뿌리가 착생되어 있는 수태를 절대 띄어내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있더라. 고민 끝에 타협해서 양 쪽에 발 담그고 반수경으로 양육을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한 달쯤이 지날 무렵 이파리가 점차 시들 시들해지면서부터였다. 서둘러 수태를 파헤쳐보니 뿌리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어휴...

작은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 Y242

 

어쩔 수 없지. 무식한 주인에게 걸린 죄. 온실에서 오냐오냐 하며 자라는 난초 따위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강하게 키우겠노라면 과감히 수태를 모두 떼어내고 물에 담가 키우기 시작했다. 근데 어랍쇼? 드디어 꽃이 폈다. 것도 피자마자 일주일을 갓 넘기고 떨어지던 다른 화분들과 달리 몇 주 사이에 연이어 하나 둘, 모두 여덟 송이가 꽃잎을 열어 줄곧 꽃술을 보여주는 중이다. 찾아보니 개화 후 짧으면 1개월, 길게는 3개월까지도 감상할 수 있다고.

꽃이 활짝 핀 아마빌리스

7일 루틴의 수경재배 관리법

괜한 반수경 도전으로 뿌리가 많이 훼손되는 바람에 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매일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서 집중 관리 중이지만 원래는 굉장히 간단하다.

 

• 1단계 : 뿌리에서 수태 등의 식재를 떼어내고 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이때 썩은 뿌리가 있다면 잘라내고 단면을 과산화수소수 등으로 소독한다.
• 2단계 : 호접란을 뿌리째 화병에 담아 물 없이 이틀 동안 말려준다. 만약 뿌리 상태가 좋지 않다면 아침, 저녁 한 번씩 분무기 등으로 뿌리와 잎 등에 물을 뿌려준다.  
• 3단계 : 3일째 되는 날, 뿌리 전체가 잠길 수 있도록 물을 가득 담아 30분 정도 놓아둔 후 다시 이틀을 말린다.
• 4단계 : 본격적으로 7일 루틴으로 반복되는 수경재배를 시작한다. 첫날은 30분 ~ 1시간 정도 뿌리 전체까지 물에 담가둔 후 2cm 정도를 남겨두고 따라버린다. 5일째 되는 날까지도 남은 물이 있다면 모두 따라 버리고 이틀 동안 뿌리를 말린다. 이 과정을 7일 단위로 반복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액상비료를 희석시킨 물에 담가준다. 이때 비료를 희석시킨 물이나 유기물로 물이 오염된 경우에는 뿌리가 썩거나 문드러질 수 있으니 반드시 모두 따라 버리고 새 물로 교체해 준다.

뿌리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 마지막 4단계 과정만 신경 써서 관리해 주면 된다. 물 교체조차 귀찮고 바빠서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만 꽃을 곁에 두는 낭만의 비용 치고는 손이 덜 가는 편 아닌가. 다만 양심껏 수집 욕심은 일찌감치 때려치우고 일단 두 녀석을 건강하게 살리기는 데만 집중하기로 자연스레 마음을 먹었다.

 

일찌감치 반려동물 양육에 재능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오늘도 나만 고양이 없어, 나만 강아지 없어를 외치고 있다면? 올봄 호접란 키우기에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