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연고 사용기

"아토피는 불치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는 내내 적당히 관리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요." 함께 병원을 찼았던 창조주에게 진료 결과를 말하던 의사의 첫마디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세상에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던 때라 드라마에서나 들었음직했던 '불. 치. 병'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귀에 콕 박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부터 아토피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 충격과는 달리 금방 적응하긴 했다. 목덜미와 볼 한쪽을 머리로 가려 최대한 은폐, 엄폐시켜야 했지만 인생에서 깨부수어야 할 퀘스트가 많았던 시절이라 상대적으로 무덤덤해질 수 있었다.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뭐니 뭐니 해도 가려움이었는데 정신없을 때는 참을 만하다가 쉴 틈이 생겨 관리라는 걸 하면 더 가려웠기 때문에 차라리 무덤덤해지는 편이 나았다. 물론 가끔은 "긁고 그냥 지옥 가겠습니다."의 마음으로 속 시원하게 도발했고, 아토피는 예상 수준을 뛰어넘은 보복으로 곧장 응답해 왔다. 

고통스러운 건 주변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창조주와 혈육은 이게 좋다더라, 어디가 좋다더라,를 끊임없이 스크랩해서 주말마다 이리 끌고 가고, 저리 끌고 다녔다. 안타깝게도 큰 성과는 없었다.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연고는 도통 효과가 없었고, 달맞이유는 오히려 극한 간지러움만 안겨주었으며, 한약은 밥 맛만 돌게 했다. 기십만 원을 들여 받았던 알레르기 테스트 또한 모르모트 체험으로 그쳤으며 세상 어떤 것에도 알레르기가 없다는 쓸데없는 진단결과만 받았다. 아토피 유발 요인이 미궁으로 빠졌을 즈음 창조주가 또다시 주변인들의 구전을 귀동냥해 왔다. 바로 동작구에 있다는 이화약국이었다.

이화약국(동작국 상도동) 조제 연고

당시의 서식지와 굉장히 멀었던 터라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할까, 회의감부터 들었다. 게다가 약국이라니... 병원도 아닌데 뭘 어떻게 치료한다는 거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던 끝에 납치당하듯 차에 실려 갔더니 생각했던 동네 약국 사이즈가 아니었다. 주차장은 주차가 어려울 정도로 쉴 새 없이 차들이 들락날락거렸고 대기실은 전국에서 몰려온 환자들로 북적거렸기 때문이었다.

약국이 피부질환 치료약으로 워낙 명성이 자자해 약국 설립 후 병원이 뒤따라 생겼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해졌다. 병원 처방전이 있어야만 약조제가 가능한 현 시스템 이전의 일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거의 반나절을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연고와 먹는 약을 처방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마틱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세상 좋다는 것 다 발라도 기를 쓰고 올라오던 발진이 빠르게 잦아들었던 것이다. 약국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토피에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테로이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터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스테로이드를 한 번 바르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고, 처음에는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영향이 컸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연고가 바닥난 후 약국에서 받은 처방전을 가지고 집 근처 피부과에 들고 갔다가 단박에 거절당한 것도 다 타당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덕분에 알게 되었다. 연고에 따라 스테로이드 등급이 나뉘어 있고, 연고의 강도를 적절한 주기와 양으로 낮춰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한 등급 아래 낮춰서 처방받고, 그다음은 더 낮춰서 처방받고. 그리고 지금은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연고를 구비해 두고 심할 때만 드문 드문 바르는 것으로 원칙을 삼고 있다. 

이화약국에서 처방받은 연고(이름을 기억하지 못 함) 외 지금까지 사용해 본 연고제는 총 세 가지다.

티티베 크림(한미약품)

이화약국이 너무 멀어서 동네 병원에 처방전을 들고 갔다가 거절당하고 대신 처방받은 연고다. 스테로이드 중등도(레벨 4) 연고로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매할 수 있다. 이화약국에서 처방받았던 연고가 매트해서 가려움이 덜한 느낌이었는데 티티베도 못지않다.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요한 만큼을 면봉에 짜서 보수적으로 사용했더니 사용기한이 끝났는데도 연고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

리도멕스 0.15(삼아제약)

상태가 호전되자 동네병원 가서 처방전을 받는 것조차 귀찮아지더라. 가족 상비약 박스에 있는 (만능형) 연고를 발랐는데 바로 이 연고였다. 창조주도 이유 모를 피부 발진이 있을 때마다 바른다고. 티티베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역시 매트해서 가려움이 금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0.15% 연고와 0.3% 연고가 있던데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건 당연히 0.15% 겠지?(잘 모름) 스테로이드 약한(레벨 7) 제제로 하나 더 구매해서 사용기한까지 알차게 썼는데 다시 구매하려고 하니 살 수가 없었다. 아쉽... 😶

노바손 크림(녹십자)

약국에 리도멕스가 없다며 대신 추천받은 연고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중등도(레벨 5) 제제였다. 😥헉! 게다가 이전 연고들이 매트해서 가려움이 금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면 이 연고는 수분 비중이 높은 로션 느낌이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만족스럽지도 않다. 아마도 지금 사용 중인 연고가 마지막이 될 듯하다.

 

곱씹어 보면 스테로이드만으로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생활습관도 뜯어고쳤고,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먹는 음식도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게 엄격한 자기 수련 과정을 거치다 보면 종종 강박증이라는 부작용의 터널도 지나와야 한다. 예를 들면 청결에 민감해진다거나 음식과 보습, 옷감 등에 까탈스러워진다거나. 마음은 털털해지고 싶은데 뇌는 초예민 진상이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잘 이해해 주더라.

지금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상황으로까지 호전되었다.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부디 누군가에게도 다행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매우 사소한 경험기를 남겨 본다.